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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1-20 10:38
시장도매인제, 임의상장제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37  
“ 시장도매인제, 임의상장제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


가락시장은 대한민국 대표 시장이다. 표준규격화가 어려운 상품적 특성과 기상이변 및 병충해로 인한 생산의 불확실성, 그에 따른 가격의 급등락은 농산물 유통의 고질적 문제이다. 절대다수의 소규모 공급과 수요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 점도 난제다. 그러나 가락시장은 이런 농산물의 유통을 비교적 훌륭하게 처리하고 있다. 전자식 경매를 이용한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결정과정과 결정된 가격을 실시간으로 시장참여자에게 전달해 생산, 유통, 소비의 효율적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은 전 세계 어느 시장도 견주지 못한다. 도매법인의 효율적 정산시스템과 중도매인의 신속한 물량 분산기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락시장은 그에 맞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가격이 폭등하면 상인들의 독점과 매점매석을 의심하고, 가격이 폭락하면 법인의 수집능력을 비난한다. 유통에 문외한인 정치인이나 유통을 안다고 자부하는 전문가나 크게 다르지 않다. 농산물 유통에 무엇이 왜 문제인지 알지 못한 채 유통구조와 경매제를 탓하는 것이 전문적 식견인 양 치부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농산물 유통이 직면한 가장 커다란 도전이다.

본질적으로 위탁상 제도와 동일한 시장도매인제가 다시 거래제도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이런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락시장은 20여 년 전 위탁상 제도의 극심한 폐해를 방지하고 농산물 유통을 효율화 시키는 목적으로 설립되어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 농산물 유통마진 중 도매단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8.6%로 산지의 10%, 소매의 23%에 비해 매우 효율적이다. 이는 또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도매유통과 비교해도 우수하다. 가락시장 운영시스템은 외국에도 수출할 수 있는 훌륭한 공공서비스 상품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적지 않은 개도국들이 가락시장의 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견학을 오고 있다.

그간 경제성장과 도시화, 그리고 식품소비패턴의 변화로 가락시장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이르러 시장의 물적 기능을 강화하고 물류효율화를 목적으로 한 시설현대화사업이 2011년부터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국가적으로 시급한 사업이 시장도매인제의 도입 여부를 놓고 수년 째 표류하고 있다. 시장도매인제 도입의 가장 커다란 명분은 경매제에 비해 유통마진이 줄어들고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검증되지도 않은 이런 주장은 실제로 10년 전 설립된 강서시장에 도입되어 실험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경매제를 건너뛰어 절감된 경매수수료는 적정가격을 찾기 위한 가격발견비용이나 계약이행비용 등 거래비용에 미치지 못한다. 경쟁을 통해 결정된 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경매제에 비해 출하자와 시장도매인 간에 비공개계약으로 이루어지는 시장도매인제가 시장의 효율성을 얼마나 저해할지 명약관화하다. 이는 현재 8.6%인 도매마진에서 경매비용을 줄이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시장도매인제가 초래할 문제는 수산물 임의상장제의 경험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1997년 YS 정부는 규제개혁 차원에서 수산물의 강제상장제를 폐지하고 임의상장제를 도입하였다. 당시에는 수산자원의 보호와 거래의 공정성을 위해 모든 수산물은 일차적으로 산지위판장을 통하게 했다. 그러나 투명한 거래로 세원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 산지수집상들이 어민들에게 좀 더 높은 가격 등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산지위판장을 우회하였다. 우회유통의 우월한 조건을 선호한 어민들은 점차 강제상장제의 폐지를 요구하였고, “강제”라는 단어를 행정규제로 해석한 당시 정부는 임의상장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어민들이나 정부 모두 상인들이 제시한 좀 더 좋은 계약조건이 강제상장제 하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간과하였다. 강제상장제가 폐지된다면 가격결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상실되어 어민들에게 오히려 큰 폐해가 될 것이라는 것이 1984년 필자의 석사학위논문 결론이었다.

임의상장제가 가져온 문제는 금방 나타났다 (“수산물 임의상장제 개선되야“ 연합뉴스, 1999.10.22.). 유통질서가 문란함은 물론 수산물 생산과 유통에 관한 통계체계가 무너져 수산정책과 국제협상에도 커다란 차질이 빚게 되었다. 급기야 2005년 해양수산부는 수산물유통구조개선의 일환으로 강제상장제의 재도입과 산지위판장 운영활성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나 MB 정부시절 해양수산부가 폐지되면서 이러한 노력이 무산되어 오늘날 수산물 유통은 정상적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어민들이 다시 강제상장제(또는 계통거래)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임의상장제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 경매제가 건강하게 운영될 경우 시장도매인제는 대안적인 유통경로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제가 득세하여 경매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가락시장은 경매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며, 경매제가 훼손될 경우 우리 농산물 유통에 재앙이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몇몇 중도매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 농민과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려대 교수 양승룡

유통in

2014 03/04

[유통전문가 칼럼]